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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029)

by 현상군 2018.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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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정약용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조 때의 문신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 공학자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참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렇다 보니 자식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직접 책을 엮어 보내 학문에 정진하도록 애를 많이 썼다.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나?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더욱 행실에 유념하도록 가르친다. 특히나 독서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요즘 마로 잔소리를 많이 한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자식들이기에 아비로써 더 신경 쓰였을 것이다..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비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가지(動容貌, 出辭氣, 正顔色)가 학문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학문의 기본은 바른 자세와 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 부터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기본, 기본의 충실함을 생각해 본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 


독서의 중요성은 물론 독서의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독서를 하면 마구잡이로 글자만 보는 독서는 독서가 아님을 강조한다. 글속의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을 잘 헤아려 읽어야 진정 독서이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자식들이 청년이 되며너 술을 멀리하라는 아비의 노파심. 주색잡기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하는 느낌.

주도에 대해서도 자신의예를 들어 가르침을 준다.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 부지런히 책을 읽는 데 힘쓰거라. 그리고 초서나 저서(著書)하는 일도 혹시라도 소홀히하지 않도록 해라. 폐족이 되어 글도 못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되겠느냐. 보통 집안 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 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 


유배 생활로 가문이 망하다시피 하니 자식들에게 개의치 말고 더욱 학문에 정진해 달라는 아비의 진심어린 부탁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도 든다. 비록 현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묵묵이 노력하고 기다리면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느껴지기도 한다.


한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생활이 빈곤하다 보니 근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는지 등등 그런 쪽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많은 양의 편지를 썼다. 가족에 대한 특히 자식의 교육에 대해 많이 다루었다. 
독서와 학문에 대해서는 각별했다. 어떻게 보면 잔소리 많은 아버지(?)
옳고 그름이 확실하고 대쪽 같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요즘 세대에 살았으면 어떠할까 생각이 든다. 좋아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그를 아주 싫어할 것 같은 인물.

하지만,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오랜 유배 생활에서 그가 견디고 버틸수 있던 게 서로 주고 받은 편지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놓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던  위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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